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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마드 알리 반전운동과 인생 첫 패배 레전드 이야기 2편

팝콘 맛집 2021. 2. 10.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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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마드 알리 복싱과 인생에서 그가 레전드인 이유 1편

 

1편에서 계속

 

무하마드 알리의 병역 거부와 판결은 주요 신문에 대서특필됨.

 

1967년 6월 베트남 전쟁 병역 징집 거부로 유죄를 판결받고

 

그간 쌓아온 모든 커리어와 직업, 재산을 잃고 파산한 알리.

 

심지어 수니파 이슬람 교단에서도 종파의 칙령에 따르지 않았다고 제명됨.

 

미국의 주류에 미운털이 박혀 모든 것을 잃은 무하마드 알리.

 

보석으로 수감은 면한 그는 항소하여 법정 공방을 계속하면서

 

돈을 벌기 위해 방송에 출연하고 대학들을 투어하며

 

베트남 전쟁을 비판하는 강연을 함.

 

사람들은 내게 2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얘기합니다! 군대에 가거나 감옥에 가는 것 말이죠! 하지만 저는 세번째 선택지가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바로 정의입니다! 베트남 사람들과 싸우느니 차라리 흑인을 차별하는 이 세상과 싸우겠습니다! 

 

방송에 나와 그의 전매특허 알리 스텝을 시전. 빠른 양발 스위칭 스텝으로 왼손과 오른손 어느 쪽이 나올지 모르게 혼란을 줌.

 

반전 운동 뿐만아니라 흑인과 백인간 연애 불가 발언 등

 

강경한 흑인 우월주의와 분리주의를 주장해 안티도 많이 생김.

 

가장 강력한 커피는 블랙 커피입니다! 약해지는 건 섞었을 때죠. 바로 크림을 넣었을 때!나는 백인 동내로 이사할 생각도 없고 백인 여자와 결혼할 생각도 없습니다! Black is best!

 

내가 택한 길이 무엇인지 잘 압니다. 알라와 평화를 믿는 나는 당신들이 원하는 챔피언이 되지 않을 겁니다"

 

그의 강경한 발언은 흑인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고

 

마틴 루터 킹 목사도 베트남 전쟁 반대의 뜻을 밝히자

 

흑인 중심의 반전운동이 크게 확산됨.

 

알리가 말한 "베트남인들은 나를 결코 깜둥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피켓을 들고 반전 시위하는 흑인들.

 

베트남 전쟁이 장기화되자 흑인을 중심으로 피어오르던 반전 여론이

 

1968년 1월 구정 공세를 기점으로 전사자 수가 크게 늘자 불꽃처럼 급격하게 확산됨.

 

미국 CBS 뉴스에서 미국 대사관을 습격한 베트콩이 미군에 의해 사살되서 시체가 되어 끌려가는 유혈낭자하고 살벌한 과정이 여과없이 방송됨.

 

혼란해진 베트남 시민들의 아비규환과 병원에서 다친 환자들의 모습도 노출.

 

언론의 전쟁 뉴스 보도 이후 히피 문화와 락 음악에 심취한 백인 청년들 사이에서도 반전 운동 확산됨. 하지만 아직 찬성파인 주류 여론을 넘지 못하는 상황.

 

미국의 청년들은 징병을 기피하기 위해 해외 도피나 개인 신상을 조작하고

 

알리처럼 양심적 병역 거부를 실행하기도 함.

 

"베트남에 평화를!" 1차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의 경험으로 힘의 논리에 빠졌던 미국인들은 전쟁이 장기화되고 전사자가 계속 늘어나며 미대사관까지 공격당하자 반대 운동이 들고 일어남.

 

확산되는 징병 기피를 막고자 법원에서 중범죄로 다뤘고

 

조금이라도 기피 행동을 보이면 적용할 수 있는 최고 형량의 죄를 적용해 판결.

 

당시 20만명이 넘는 미국 청년들이 병역 문제로 기소당함.

 

한편 알리는 주립 권투협회가 없어 시에서 경기를 승인할 수 있었던 조지아주에서

 

알리의 경기를 보고싶은 상원의원의 도움으로 아틀랜타에서 복싱을 할 수 있게 됨.

 

알리측은 곧바로 해비급 탑 10 랭커에게 경기를 주선했고

 

이에 응한 선수는 백인 인파인터로 정상급 인기를 누렸던 제리 쿼리.

 

단신이지만 흑인 강타자에게도 피하지 않고 맞불 놓는 불굴의 백인 파이터로 인기많았던 제리 쿼리. 54살의 이른 나이에 펀치드렁크 치매로 사망. 

 

1970년 10월 26일 무하마드 알리는

 

3년 반이라는 긴 공백기를 마치고 29살의 나이로 링 위에 오름.

 

전성기때보다 풋워크가 느려졌지만 수준 높은 펀치 퍼포먼스를 보여준 알리. 눈이 찢어진 제리 쿼리에게 3라운드 TKO 승리를 따냄.

 

오랜만의 복귀에 대한 우려를 떨쳐버리고

 

무패 전적을 유지하며 권투 황제의 건재함을 과시함.

 

 

그의 경기를 본 흑인 지위 향상협회에서

 

알리의 복싱 금지령이 차별적이라며

 

뉴욕주 운동위원회를 연방 법원에 고소했고 마침내 금지령이 해제됨.

 

다시 뉴욕에서 복싱할 수 있게 된 알리.

 

돌아온 원조 무패 해비급 챔피언에게 금방 시합이 성사되고

 

아르헨티나 출신 터프한 오스카 보나베나와 싸우게 됨.

 

68전 58승 9패 1무 맷집 좋고 강펀치 소유자. 이후 34살의 젊은 나이에 창녀의 집 근처에 주차한 차 안에서 포주의 총에 사살됨.

 

맷집 좋은 오스카는 아무리 때려도 쓰러지지 않아 15라운드까지 접전이었으나 레프트 훅 카운터에 다운. 오뚜기처럼 두번 더 일어났지만 다시 쓰러짐.

 

일어나면 다시 두들겨 KO시키는 무하마드 알리.

 

"이제 누가 진짜 세계 챔피언인지 겨룰 때가 왔어요!"

 

그의 바람대로 1971년 3월 8일 WBA, WBC 통합 해비급 타이틀 매치가 잡힘.

 

각각 250만달러의 엄청난 빅 머니 게임(현재가치 한화 300억).

 

당시 해비급 챔피언은 182cm 단신 인파이터 조 프레이저.

 

해비급에서 단신이지만 다부진 근육질에 1964년 도쿄 올림픽 금매달도 따낸 근본있는 선수. 67세에 간암으로 사망.

 

머리 숙이고 안으로 파고들어 단거리에서 복부를 두들기면서 상대 가드를 내리고 레프트훅을 꽂아 KO시킴.

 

서른살의 31전 전승 돌아온 전챔피언 알리와

 

28살의 26전 전승 현챔피언 조 프레이저와의 타이틀 매치에

 

무패 전사들의 세기의 파이트라며 모든 언론의 주목이 쏟아짐.

 

알리는 흑인과 젊은 진보주의자들이 응원했고 프레이저는 백인과 보수주의자들이 많이 응원함.

 

도전자 무하마드 알리는 챔피언 밸트를 되찾을 생각에 흥분한 듯

 

조 프레이져에게 예고 KO까지 선언하며 혼신의 힘을 다해 트레쉬 토킹함.

 

넌 너무 멍청하게 생겼어! 챔피언이 되려면 나처럼 생겨야지! 이 엉클 톰(존심없이 백인에게 굴종하는 흑인)같은 녀석!

 

경기 당일 세상이 멈춘 듯 모든 시선이 링 위에 집중됨.

 

하지만 경기 양상은 평소 알리가 하던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느려진 풋워크로 프레이저에게 거리가 잡히기 일수였음.

 

3라운드부터 머리흔들고 돌진하는 조프레이저를 효과적으로 막지 못해 고전하는 무하마드 알리.

 

코너에 몰려 거리가 잡히면 터지는 레프트 훅

 

파고들어 바디치고 가드사이 어퍼컷!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무하마드 알리.

 

15라운드 동안 이렇다할 방법을 못찾은채 밀리다 결국 레프트훅 다운.

 

알리는 곧바로 일어나 KO는 면했지만 결과는 만장일치 판정패.

 

알리의 생애 첫 패배.

 

승자와 패자의 명암. 기록으로 영구히 박제됨.

 

프레이저를 응원한 많은 백인과 우파 보수주의자들은 열광의 도가니.

 

알리는 첫 패배를 덤덤하고 성숙한 자세로 받아들임.

 

언제나 승리는 제 것이었는데 이번은 아니였어요. 패배자들의 마음이 이해됩니다. 만약 다시 돌아온다면 좀더 열정을 갖고 시합에 임할거에요. 위대하고 착각하며 그 정신을 잃었거든요.

 

경기 후 무하마드 알리는 이제 노쇠했으며

 

조프레이저가 진정한 챔피언이라는 글들이 쏟아졌지만

 

알리의 인기는 견고했고 화제의 인물로 TV 방송에도 자주 등장함.

 

TV에서 여전히 거만한듯한 언변을 쏟아내는 알리. "그때는 방심했었죠. 언젠간 다시 챔피언 밸트를 되찾을 겁니다. 반드시"

 

한편 1971년 6월 28일 대법원에서 날아온 희소식.

 

마침내 그의 징병기피죄 유죄 판결을 뒤집고 만장일치로 파기함.

 

반전 여론에 힘입어 오랜 법정 싸움에서 승리해 홀가분해진 알리.

 

이제 복싱에만 집중하며 꽃 길만 걸을 것 같은 알리.

 

하지만 그에게 또다시 시련을 안긴 인물이 등장하는데....

 

알리의 턱을 부순 인물 켄 노턴.

 

가운데 수건 두른 인물이 켄 노턴. 한 때 스파링 파트너였던 조프레이저에게 알리 공략법을 전수받음. 영화배우도 하다가 71살에 심부전으로 사망.

 

1973년 3월 31일 센디에고.

 

아웃복싱하는 알리의 복부를 쳐서 발을 묶고 양훅으로 공략. 알리는 발이 현저히 느려지며 두들겨 맞음.

 

결과는 KO는 면한 15라운드 판정패.

 

당시 당시 평소 알리에게 볼수 없던 둔화된 움직임에

 

아나운서들이 연신 "알리가 지쳤습니다!" 소리쳤고

 

알리의 시대가 끝났다는 평이 쏟아짐.

 

알리의 턱을 부수는 켄 노턴. 견고했던 그의 챔피언으로서의 입지가 결정적으로 무너지기 시작.

 

화려한 토크도 두번째 패배의 그늘속에서 영향력이 사라지기 시작.

 

알리는 스스로 변화의 필요성을 느낌.

 

스스로의 변화를 위해선 예전같지 않은 몸을 인정하는 것이 먼저. 그는 덤덤히 인정하고 멋지게 변화함.

 

켄 노턴과 조 프레이저에 대한 화려한 복수!

 

그의 끊임없는 변화와 챔피언에 대한 도전!

 

복싱계 전설이 될 수 밖에 없는 무하마드 알리 이야기!

 

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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