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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마드 알리 복싱과 인생에서 그가 레전드인 이유 1편

팝콘 맛집 2021. 2. 9.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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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마드 알리

 

1942년생 미국 출신 복싱 해비급 레전드

 

아마추어 복싱 선수시절 본명 캐시어스 마셀러스 클레이 주니어로 활동

 

키 190cm 몸무게 107kg 리치 198cm

 

아마복싱 전적 105전 100승 5패

 

1960년 로마 올림픽 복싱 라이트해비급 금매달리스트

 

백인들 사이에서 당당히 금매달을 목에 건 케시어스 클레이

 

미국을 대표해 금매달까지 딴 복싱 선수이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인종 차별을 느끼던 그는

 

흑인 인권 운동에 대한 관심이 싹트고 있었음.

 

60년대 미국은 백인의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 공공연하고 극심하던 시절.

 

당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비폭력 흑인 민권 운동이 활발했음.

 

이후 그는 프로로 전향, 해비급으로 월장.

 

당시 투박하게 뚜벅뚜벅 걸어가 파워 펀치 난타전하던 해비급에서

 

얼굴에 속사로 꽃어버리는 컴비네이션과 사기급 회피능력,

 

경량급처럼 빠르고 경쾌한 스텝으로 19전 전승 15KO의 화려한 전적을 쌓음.

 

그를 트레시 토킹 스타로 만들어준 예고 KO 장면

 

특히 시합 전 4회에 KO 시키겠다!

 

예고한대로 챔피언 출신 무어를 4라운드에 끝내버려 유명세를 탐.

 

인기에 힘입어 1964년 2월 첫 타이틀 매치 성사됨.

 

챔피언 소니 리튼 VS 도전자 케시어스 클레이

 

당시 WBA 해비급 챔피언은 강력한 한방으로 초반 라운드 KO 찍어내던

 

복싱계 문제아 소니 리스턴.

 

불운한 과거로 감옥도 들락거리던 파워 복서 소니 리스턴

 

복싱 역사상 가장 강한 펀치 100명중 15위에 랭크된 소니

 

시합 전 열린 기자회견에서 대부분 소니가 이길 것으로 예상했지만

 

클레이는 소니를 못생기고 느린 곰탱이라고 놀리며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

 

라는 명대사를 내뱉음

 

드디어 모두가 기대하던 해비급 타이틀 매치

 

초반 라운드부터 전매특허인 강펀치를 날리는 소니. 하지만 완벽한 거리감과 노가드 회피, 빠른 풋워크만으로 피하는 알리.

 

앞손으로 거리유지하며 몰다가 빈틈 보이면 양손 파워 콤보를 날림

 

눈가가 찢어진 채 완전히 페이스 말린 소니는 6라운드 쯤 되자 강펀치는 사라지고 방어에만 급급하다가 7라운드 시작 전 닥터 스톱으로 패배함.

 

다소 싱겁게 역대 최연소인 22살 나이에 해비급 챔피언이 된 클레이.

 

무기력하게 패한 소니에게 도박 관련 승부조작 의혹 제기됨.

 

한편 클레이는 흑인과 백인 분리주의를 주장한 블랙 이슬람 지도자인

 

말콤 엑스에게 감화되어 이슬람으로 개종함.

 

알리의 분리주의 강경 노선에 영향을 준 말콤 X. 정통 이슬람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종교 노선을 가겠다고 선언한 후 블랙 무슬림 단원의 총격에 사망함.

 

이후 흑인 노예스러운 이름 케시어스 클레이를 버리고

 

정통 수니파 엘리자 무하마드가 하사한 이슬람식 이름 무하마드 알리로 개명.

 

알리의 평화주의 노선에 영향을 준 블랙 무슬림 지도자 엘리자 무하마드. 알리는 평생 그를 영적인 아버지로 생각함.

 

블랙 무슬림이냐는 질문에 인정하며 "저는 여러분들이 원하는 사람일 필요가 없습니다. 난 흑인이고 자신감 넘치고 건방지죠. 신앙도 당신들과 다릅니다. 나는 내 마음대로 살 권리가 있어요. 나에게 익숙해지세요" 라는 지리는 멘트를 날림.

 

블랙 무슬림 선언으로 인기가 확 떨어지자 시합 매칭이 힘들어짐.

 

말콤 엑스가 총격에 사망한 후인 1965년 5월

 

겨우 주선된 소니 리스턴과의 재대결에서

 

1라운드 첫번째 라이트 카운터 다운. 당시 너무 빨라 안보이는 주먹에 소니가 쓰러졌다고 유령펀치(Phantom punch)라고 불림.

 

유령 펀치 슬로우 장면. 정확한 타이밍의 슥빡.

 

쓰러진 소니에게 "일어나 싸워 이 새끼야!" 라고 소리치는 알리 인생샷. 복싱 역사상 최고 명장면 중 하나.

 

겨우 일어난 소니에게 자비없는 주먹연타를 퍼붓는 알리

 

압도적인 기량으로 1라운드 KO 승리를 거머쥠.

 

명실상부한 해비급 챔피언이 된 무하마드 알리.

 

하지만 그는 세간의 쏟아지는 관심을 향해 강경한 흑인 민권 운동을 함.

 

마이크 앞에서 소신있는 수위 높은 발언을 쏟아내던 알리.

 

심지어 인종 차별을 일삼는 백인들에게서 흑인을 사회적으로 분리해야 한다는 강경한 발언을 함.

 

이 같은 극단주의적 발언과 이슬람 종교 활동은 백인 사회뿐만 아니라

 

같은 흑인 복서들 사이에서도 호불이 나뉘어

 

흑백 인종 통합주의자이자 천주교인 플로이드 패터슨 왈.

 

알리의 정치적 관점과 종교관을 까대며

 

저 시건방진 무슬림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때려 눕히겠다! 클레이로부터 챔피언 밸트를 되찾아 미국에 바치는것이 내 의무다!

 

일부러 개명전 이름으로 부르며 비난하자 빡친 알리

 

링 위에서 저놈 실컷 두들겨 패버리겠다!

 

삶의 방향과 정체성의 전환점인 개명된 이름을 무시하고

 

개명전 이름을, 그것도 같은 흑인이 불렀다는 것에 분노한 알리.

 

링 위에서 플로이드 패터슨을 마주한 그는

 

경기중 계속 토끼라고 도발하며 분노가 담긴 펀치를 날리는 무하마드 알리

 

그의 말대로 경기 내내 두들겨 패다가 12라운드 심판 스탑 TKO로 승리함

 

이후 수차례 방어에 성공한 해비급 챔피언이자

 

흑인 인권운동가로 활발히 활동하던 무하마드 알리.

 

1966년 2월 당시 미국은 베트남과 전쟁에 한참이었는데

 

징집 영장을 받은 알리는 종교적 양심을 이유로 병역 거부를 선언함.

 

 

당시 베트남 참전에 대한 미국 승전 기대감이 돌던 때라

 

참전을 거부한다는 것은 사회에 큰 거부감이 드는 발언.

 

결국 알리의 고향 루이스빌과 시카고에서 챔피언 타이틀과 복싱 출전 자격을 박탈함.

 

"전쟁이 미국에 사는 흑인 2,200만명에게 자유와 평등을 안겨준다면 날 굳이 징병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었을 겁니다. 내일 당장 뛰어가 입대할테니까요!"

 

이후 백인 주류의 외면에 경기가 주선되지 않아 힘들게 시합을 매칭했고

 

1967년 2월 6일 알리의 공석으로 WBA 해비급 챔피언이 된 어니 터렐과 경기 잡힘.

 

서로 챔프가 되기 전 알리 집에서 잠도 잘 정도로 친분 있던 터렐.

 

하지만 어니 터렐은 체중을 계체하는 과정에서 말실수를 하는데

 

케시어스 클레이! 니 주먹은 솜방망이야!

 

또 다시 예전 흑인 노예 이름으로 불리자 딥빡한 알리.

 

KO는 그에게 너무 자비로워요! 저놈이 링 위에서 내 이름 똑바로 부를 때까지 줘팰겁니다!

 

시합 당일 알리는 KO 시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15라운드 꽉 채워서 어니 테렐을 일방적으로 두들겨 팸.

 

내 이름이 뭐라고?(툭툭) 내 이름이 뭐?!(툭툭) 뭐냐고 새꺄!!(퍽!)

 

일방적인 판정승을 거두고 28승 무패 전적의 WBA 해비급 챔피언이 된 알리.

 

눈 밑 뼈가 골절되고 턱이 퉁퉁 붓도록 일방적으로 맞은 어니 터렐.

 

챔프로서 한 차례 방어에 성공한지 한달 후인

 

1967년 4월 입영 날짜에 맞춰 텍사스 징병위원회에 등장한 알리.

 

하지만 그는 입영 절차중 하나인 입영 선서를 거부함.

 

앞으로 한발 나와서 선서하세요!

 

......

 

한번만 더 거부하면 1만달러 벌금내고 5년동안 감옥갑니다!

 

끝까지 꼼짝안하고 서있던 알리는 결국 체포됨.

 

단호한 입영 거부에 결국 체포되는 알리.

 

WBA에서 알리의 챔프 타이틀과 복싱 선수 등록까지 취소하며

 

대부분의 복싱 협회에서도 그의 선수 등록을 박탈해버림.

 

이후 6월 20일 알리의 탈영죄 재판에서

 

12명의 백인 배심원들은 20분 남짓 짧은 시간만에 유죄로 평결.

 

 

25살 알리는 1만 달러의 벌금과 5년형을 선고받고

 

최고 전성기를 꽃피울 나이에 길고 긴 법정 공방을 하게 됨.

 

전설 오브 레전드 무하마드 알리의 복싱과 인생 이야기는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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